내 마음의 양식

너를 마지막으로 나의 청춘은 끝이 났다 - 은교

문학중년 2012. 5. 15. 23:33

 


은교

저자
박범신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0-04-06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네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너를 사랑했다!존재의 내밀한 욕망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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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뭔가 감상문의 제목을 그럴듯한 것으로 하고 싶었다. 잘 떠오르지가 않았다. 이렇게, 저렇게,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나도 모르게 우연히 '너를 마지막으로 나의 청춘은 끝이 났다'라고 흥얼거렸다. 아, 조용필 노래가 맞는데 제목이 떠오르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가사와 함께 조용필로 검색을 하니 조용필의 'Q(큐)'가 나왔다. 어릴 때 듯던 노래인데, 지금 다시 들으니 은교의 내용과 함께 가사 하나하나가 의미있게 들린다. 마치 이적요 시인이 은교나 서지우에게 하는 이야기 처럼...

너를 마지막으로 나의 청춘은 끝이 났다. 우리의 사랑은 모두 끝났다
램프가 켜져 있는 작은 찻집에서 나 홀로 우리의 추억을 태워버렸다

사랑 눈 감으면 모르리 사랑 돌아서면 잊으리
사랑 내 오늘은 울지만 다시는 울지 않겠다

하얀 꽃송이 송이 웨딩드레스 수놓던 날 우리는 영원히 남남이 되고
고통의 자물쇠에 갇혀 버리던 날 그날은 나도 술잔도 함께 울었다

사랑 눈 감으면 모르리 사랑 돌아서면 잊으리
사랑 내 오늘은 울지만 다시는 울지 않겠다

너를 용서않으니 내가 괴로워 안되겠다. 나의 용서는 너를 잊는 것
너는 나의 인생을 쥐고 있다 놓아 버렸다. 그대를 이제는 내가 보낸다

사랑 눈감으면 모르리 사랑 돌아서면 잊으리
사랑 내 오늘은 울지만 다시는 울지 않겠다

  소설을 읽은 지 정말 오래 되었다. 마지막으로 읽었던 적이 언제인지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아무래도 김훈 작가의 '남한산성'이 마지막이 아니었나 싶다. '은교'라는 이름을 듣자 마자 무슨 다리 이름인가 했는데, 영화로도 제작되고, 박범신 작가의 인터뷰 기사가 신문에 자주 나오면서 서서히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70대 노시인과 그를 따르면서 시기하는 젊은 소설가, 그리고 그들이 사랑한 여고생의 이야기라는 것을 얼핏 본듯 했다.

  박범신 작가는 내가 고등학교 때 '불의 나라'라는 소설을 발표한다. 글은 신문에 연재되었고, 그 연재물을 모아서 단편이 출간되었는데 베스트셀러가 된다. 당시 국어선생님은 그를 평하면서, 통속소설 작가이고, 그의 글은 문학적으로 가치가 없다고 비판했던 기억이 난다. 그 논란이 당시 이슈화가 되었고, 박범신 작가에게는 큰 충격이 되었던 것 같다. 그 당시 작가가 느꼈을법한 내용들이 작품 곳곳에 표현이 되어 있다.

  영화광고를 보면 젊음을 탐하는 노인의 욕망처럼 느껴지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작가는 책에 관하여 '존재의 내밀한 욕망과 그 근원을 깊이 탐험하고 기록했다'라고 했다. 고요하고 쓸쓸히 늙어가는 이적요 시인은 은교를 보면서 새로운 욕망을 느낀다. 젊었을 때 폭행 당하던 자신을 감싸주던 동네 누이의 모습을 은교를 통해서 발견하며, 은교에게 사랑을 느낀다. 이 모습을 바라보는 서지우는 질투를 느끼게 된다. 작가로서 소질이 없는 자신과 스승을 비교하면서 느꼈던 열등감과 어린 여학생조차 노인에게 빼앗긴다는 자괴감에 스승과 경쟁아닌 경쟁을 하게 된다.

  이적요 시인은 서지우가 자신의 작품을 몰래 빼돌려 발표해서 성공했을 뿐 아니라, 은교마저 자신에게서 빼앗아 갔다고 생각하여 결국 살인까지 시도하게 된다. 반면 은교는 두 사람이 모두 죽은 뒤에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하는 것 같았고, 자기가 오히려 주변이 같았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적요 시인의 집을 둘러싼 소나무 뿌리와 줄기를 이야기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마치 세 사람의 얽히고 섥힌 관계를 설명하는 듯 하다.

  작가 표현대로 하면 이적요와 서지우, 은교 세 존재의 내밀한 욕망과 그 근원을 각자의 관점에서 깊이 탐험하고 기록한 듯하다. 작가와 이적요 시인의 나이는 얼추 비슷하다. 이적요 시인이 말하는 자신이 나이 들면서 느끼는 신체적, 정서적 변화를 놀랍도록 그럴듯하게 서술하는데 아마도 작가의 경험이 그대로 녹아있지 않나 싶다. 생각보다 문체와 글의 흐름이 차분하고 다정하다. 밤에 썼기 때문에 꼭 밤에 읽으라고 하는 이유를 알 듯 하다. 인간의 내밀한 욕망에 관하여 잘 묘사한 내용이 많아 인생이란 어떤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이번 주말에는 영화 '은교'를 볼까 한다. 나도 모르게 다시 흥얼거려진다. '너를 마지막으로 나의 청춘은 끝이 났다.'